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르난 크레스포 (문단 편집) == 여담 == 당대에는 유명한 선수였지만 후대에는 그리 주목을 받지 못 했는데 [[첼시 FC|첼시]]에서의 실패[* 먹고 튄건 아니다. 출전수 대비 공격포인트는 준수한 편이였으나, [[주제 무리뉴|무리뉴]]가 선택한 선수가 [[디디에 드록바|드록바]]였기에 밀려났다. 플레이 스타일은 둘다 비슷하지만, 피지컬에서 드록바가 한수 위였다. 아이러니 하게도 밀란에서 같이 뛰었던 동료인 [[안드리 셰브첸코|셰브첸코]]역시 첼시에 와서 먹튀화가 되고 말았다. [[주제 무리뉴]]와 크레스포는 2008년 인터 밀란에서 다시 재회한다.]와 선수시절 경력 대부분이 [[세리에 A]]인점과, 대표팀 동료인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바티스투타]]의 존재 때문이다. 국내에서 해외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청하기 시작한 2007년이 전성기 끝물이라서 파트너였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이브라히모비치]]가 더욱더 주목받았다. 매니아층 사이에서는 '큰외숙모'로 불리고 있다. 2001년에는 이적료 서열 3위였다. 1위가 [[지네딘 지단]], 2위가 [[루이스 피구]]였다. 당시 크레스포가 파르마에서 라치오로 이적할 때 [[세르지우 콘세이상]] + [[마티아스 알메이다]] + 역대 3위에 해당하는 이적료로 이적했다. 남미 지역예선 역사상 최다득점자가 크레스포로서 9골을 달성했는데 이 기록은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지역예선(남미)|2014년 브라질 월드컵 남미 지역예선]] 11라운드 [[베네수엘라 축구 국가대표팀|베네수엘라]]전에서 국가대표 후배인 [[곤살로 이과인]]이 연속 두골을 넣고 동률을 찍었다. 조만간 깨질 듯. 하지만 정작 이 기록을 깬건 국가대표 후배들인 메시나 이과인이 아니라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옆동네]]의 [[루이스 수아레스]]였다. 수아레스는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지역예선(남미)|2014년 브라질 월드컵 남미 지역예선]]에서 혼자 11골을 넣음으로서 남미 지역예선 역사상 최다득점 기록을 경신했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바티스투타]]에게 밀려 불행한 국대 커리어를 보냈지만 둘의 사이는 좋은 편이다. [[디에고 마라도나|마라도나]]가 '''"그놈들은 골방에서 서로에게 주먹질을 하며 한 명이 죽을때까지 가둬놔야 한다"'''라고 한 발언 때문에 사이가 안좋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바티스투타는 2014년에 한 인터뷰에서 "2002년엔 우리가 투톱으로 뛰어야 했고 이 사실은 비엘사만 몰랐다 에르난은 경기에서 뛰고 싶어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 둘은 세리에 시절에도 단 둘이 기념사진도 찍었었고 [[https://mobile.twitter.com/roynemer/status/1005975391683661825|2018년]]에 기념 사진도 찍는 등 은퇴 후에도 잘 지내고 있다. [[UEFA 챔피언스 리그/2004-05 시즌/결승전|이스탄불의 기적]]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 크레스포는 인터뷰로 이런 주장을 하는 자들에게 일침을 시전했다. >Q) 리버풀과 2005년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하프타임 때 밀란 라커룸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알려진 것처럼 선수들이 정말 우승을 자축하고 있었나? (마이클 게일, 트위터) >A) 잠깐, 인터뷰에서 '''[[개소리]]'''라는 표현을 써도 되는가? [[장항선(배우)#s-5|그게 무슨 개소리야!]] 축구를 시작하면 제일 처음 배우는 것 중 하나가 경기 시간이 90분이라는 거다. 밀란 선수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당시 베테랑이 많았다. 정말 우리가 하프타임에 우승 파티를 열었다고 생각하는가? 일부 기자들이 지어낸 소설에 불과하다. 우리는 세 골 리드에도 후반에 더 나은 플레이를 하기 위한 전략을 짰다. 이스탄불의 비극은 인간 능력 밖의 일이었다. 그게 축구다. 축구는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아픔도 준다. 전반전은 환상적이었다. 컨디션도 좋아서 내가 2골을 넣었지만 결국 패했다. 지금도 그날 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경기 후 팀 분위기는 장례식장 같았다. 라커룸, 클럽 버스, 심지어 숙소로 돌아와서도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쉽지 않았다. 몇몇 선수는 울었다. 반면 당시 밀란의 수비수 [[카푸]]의 인터뷰에 따르면, 실제로 승리의 자축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방심해 정신 상태가 풀어졌던 건 사실이었다고 한다. [[https://www.liverpoolecho.co.uk/sport/football/football-news/cafu-liverpool-champions-league-final-16358385|카푸의 인터뷰 원본]] [[https://m.fmkorea.com/best/1861547786|인터뷰 번역]] [[이탈리아]] 국적을 취득하고 이탈리아 여자와도 결혼했다.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서 잠정적으로 은퇴한 적이 있었다. [[앙헬 디 마리아]]같은 경우는 팀내에 크로스를 올려도 받아먹을 선수가 없다면서, 크레스포 유형의 선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축구팬들이 '''크레스포가 1990년생이었으면 아르헨티나가 지금보다 우승을 2번은 더 했을 것이다'''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너무 일찍 태어난 게 문제였다.[* 굳이 1990년생일 필요도 없다. 1985년생이었어도,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는 뛸 수 있다. 특히, 브라질 월드컵은 크레스포와 바티스투타의 부재를 뼈저리게 느낀 대회였다. 메시 혼자서 팀을 이끌고 그나마 디 마리아가 도움이라도 됐는데 8강전 부상으로 4강전부터 뛰지못했고 아르헨티나는 4강부터 승부차기를 제외하면 한골도 못넣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득점찬스때 공을 잡은게 팔라시오와 이과인이 아닌 크레스포와 바티스투타였다면 괴체의 결승골이 나오기 전에 승부가 났을 것이다.] 다행히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훌리안 알바레스]]라는 뛰어난 스트라이커가 7경기 4골을 기록하며 우승에 일조했다. 축구 이외에 좋아하는 스포츠가 있는데 유럽의 인기 종목 중 하나인 'F1' 레이싱이다. 이러한 취미때문인지 자동차에도 관심이 많으며 푸른색의 페라리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보물 1호'로 꼽기도 한다. 락밴드 [[롤링 스톤즈]]를 좋아하며 그들의 음반을 자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자신의 모국어인 스페인어를 비롯해 이탈리아어, 영어를 구사할줄 안다. [[피파 온라인 4]]에선 준수한 스피드와 강한 몸싸움과 뛰어난 침투, 헤더 능력, 좋은 약발을 갖춰 게임 내 대표적인 만능형 공격수로 꼽히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호날두]], [[호나우두]]와 함께 소위 말하는 대장급 스트라이커중 한명으로 뽑혔었다. 후에 코치특성 추가와 새로운 신규시즌의 대거 등장으로 더이상 대장급 공격수로 꼽히지 않게 되었다. [[아르헨티나]] 직속 후배 [[라우타로 마르티네스]]의 이적설에 적어도 3년은 더 [[인테르]]에 있으라고 충고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